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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살아남기/2020 ~ 2022 -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남기

(1)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남기 - 정말 힘들었던 첫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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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 드디어 남자 친구가 있는 샌프란으로 입성했다. 배우자 비자가 1년 넘게 걸려서 좀 스트레스받긴 했지만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샌프란에 온지 한 달밖에 안됐는데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마치 일 년 정도 지난 것 같다.ㅋㅋ 그리고 마음고생해서 얼굴도 한 일 년 늙은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 큼지막한 사건들만 나열해보면..

1. 샌프란 도착 후 너무 더러워서 문화충격
2. 혼자 살다가 같이 다시 사니까 안맞아서 엄청 싸움
3. 오자마자 잡을 구해야 된다는 (내가 혼자 받는) 스트레스에 극도로 예민/우울
4. 커플 테라피 시작
5. 안정기 진입 - 남자 친구와도 어느 정도 서로 적응함

이 정도 된다. 사실 여기에 극심한 우울증 + 불안감 + 후회 등등 엄청난 감정들이 뒤섞여서 인생이 이렇게 까지 바닥칠 수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호르몬까지 스트레스로 요동쳤는지 생리도 미뤄지고 여하튼 엄청나게 힘든 한 달이었다. 함께 있었던, 그리고 이 모든 걸 감내해야 했던 남자 친구도 엄청 힘들어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도 혼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마 나를 위한 공간을 내주는 과정에서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진짜 사소한 거, 예를 들면 변기 뚜껑을 닫네 마네로도 다섯 시간 싸웠으니까 ㅋㅋㅋㅋㅋ

일단 위에 내용들을 좀더 자세히 얘기해보면..

1. 샌프란 도착 후 너무 더러워서 문화충격

아니, 나는 예전에 샌프란시스코에 꽤 오래 살았고, 남자 친구 때문에 자주 왔다 갔다 했었다. 근데 그때는 '우왕 금문교, 우왕 애플 구글.. 실리콘 벨리' 이러면서 좋은 점만 보였는데 지금 코로나로 텅텅 빈 거리를 보니 진짜 그지 꼴이 따로 없다. 너무 더럽고 (예전에도 더러웠는데 콩깍지 씌어서 잘 안보였다) 홈리스도 너무 많고.. 그리고 건물들이랑 거리도 진짜 너저분 지저분 한데 그것도 꼴 보기가 싫다. 

암스테르담에 살 때 누렸던 깨끗하고 멋있는 건물, 잘 관리된 도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멋지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에 너무 적응이 되었던 나머지 미국에 내리자마자 문화 충격을 받았다. 하.. 진짜 트럼프가 개발도상국보고 shithole countries라고 한 게 정말 이해가 안 갈 정도다^^ (너네 나라가 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하튼 이제 길을 가면서 길에 똥이 있나 없나도 잘 확인해야 되고(그리고 이게 사람 똥인지 개똥인지는 대략 반반의 확률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다 ㅅㅂ..), 마스크 안 쓰고 있는 소리 지르고 있는 홈리스도 잘 피해가야 된다. 그리고 ㅜㅜ 나의 눈을 즐겁게 해 주던 예쁜 암스테르담의 건물을 잊고 이 그지 같은 미국의 주택과 건물들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여기 와서 사진도 거의 안 찍음.. 찍을 게 없더라 ㅋㅋㅋㅋㅋㅋ)

 

2. 혼자 살다가 같이 다시 사니까 안맞아서 엄청 싸움

이건 뭐..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다. 코로나 때문에 롱디 하느라 (남자 친구 샌프란, 나 암스테르담) 같이 산지 육 개월이 넘었고, 그리고 나는 혼자 살 때 너무 너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같이 살면 힘들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진짜 사소한 거부터 부딛혔고, 그리고 남자 친구가 10년 동안 살던 집이니 자기의 룰이 있어서 나한테 처음에는 그걸 따라주길 바랬다. 예를 들어 공기 지수가 몇 이상이면 창문 열지 않기, 대문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곤충이 들어올 수 있으니 바로 닫기 등등.. 근데 나는 남자 친구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나는 벌레가 들어와도 환기를 시키는 성격이고 (예전에 살던 집에 방충망이 없어도 그냥 열어놨음..ㅋㅋ), 그리고 책상에 펜이 좀 묻어도 별 신경 쓰지 않는다. 

여하튼 이렇게 나의 털털함과 남자 친구의 예민함이 부딪히면서 엄청난 갈등을 일으켰고, 그리고 나의 우울증 + 불안감 때문에 나의 화는 불같이 타올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 나 한국 갈래를 몇 번이나 싸우면서 외쳤는지..

 

3. 오자마자 잡을 구해야 된다는 (내가 혼자 받는) 스트레스에 극도로 예민/우울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Fab Academy 코스를 듣기 위해 작년 11월에 일을 관뒀다. 그리고 코스가 끝나는 6월이면 비자가 나올줄 알고 그럼 6월에 미국 와서 일 구하면 되겠다~ 했는데 코로나 새끼 때문에 나의 모든 계획은 틀어지고 결국 계획과는 다르게 일을 1년이나 쉬게 되었다. 이미 나의 세이빙은 바닥나서 남자 친구가 긴급 수혈 해준 상태였고, 남의 돈을 받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빨리 일을 해서 돈을 갚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자 친구는 제발 천천히 구하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빨리 구하고 싶었다. 일단 일을 1년이나 쉬어서 불안했고, 내가 사고 싶은 걸 못 산다는 게 너무 답답했고, 꾼 돈을 빨리 갚고 싶었다 (안 갚아도 된다고 하는데 인지상정이 있지..ㅋㅋㅋ)

여하튼 그래서 삼 주간 미친 듯이 손톱 물어뜯어가며 지원한 결과!!! 한 회사와 인터뷰와 코딩 인터뷰를 하고 이틀 전 드디어 오퍼를 받았다. YES!!!!!!!!!!!

남자 친구 왈 "제발 처음 온 오퍼 바로 수락하지 말고 좀 더 찾아봐.. 나중에 맘에 안 들어도 관두기 힘들고, 일 하면서는 일 찾기 힘들어"
"일 찾는게 더 힘들어.. 그리고 나 너무 오래 쉬어서 useless 한 사람 같아. 일단 일 하다가 맘에 안 들면! 그때 다시 찾을래"

사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샌프란에서 소프트웨어 포지션도 예전보다 많이 준 것 같다. 그리고 좀 괜찮은 데가 있으면 진짜 한 100명 이상 지원하고 그랬기에 너무 불안했다. 일단 여기 다녀보고 정 마음에 안 들면 갈아타던지 해야지. 그리고 일단 연봉이...ㅋ 내가 평생 받아본 적 없는 돈이기에.......

 

4. 커플 테라피 시작

이렇게 내가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안감, 그리고 우울감을 겪으면서 우리 사이가 많이 틀어졌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인데 정말 우리 연애 곡선에 바닥을 찍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커플 테라피를 찾아서 상담을 시작했다.

두 분을 찾았는데 처음 한 분은 그냥 그랬다. 근데 두 번째 테라피스트 샘이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서 그 말을 대신 전달해 주셨다. 그리고 남자 친구의 마음도 잘 이해하고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잘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분과 앞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 부부도 많고 해서 커플 테라피스트들이 진짜 바빠서 찾기 힘들었는데 좋은 분 찾게 돼서 다행이다.

 

5.  안정기 진입 - 남자 친구와도 어느 정도 서로 적응함

이 4주간의 엄청난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서 드디어 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울고 불고 싸우고 하는 게 확실히 없어졌고, 그냥 싸우고 나면 현타가 약간 오고 후회 좀 하고 하는 정도이다^^ㅋㅋ 그리고 내가 인터뷰하고 잡을 구하면서 확실히 좀 더 스트레스가 풀려서 덜 싸우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요즘에 나는 workshop 공간을 찾고 있다. 집에서는 냄새에 겁나 예민한 남자 친구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목공예나 납땜(ㅋㅋㅋㅋㅋㅋㅋㅋ)을 하기가 힘들기도 했고, 그리고 나도 좀 얘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이다. 일단 괜찮은 곳을 찾아서 연락을 해놨는데 꼭 답장 왔으면 좋겠다!!!!!

 

결론

너무 스트레스받는 한 달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둘이 함께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행복은 노력한 만큼 온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 말은 믿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암스테르담에 혼자 살 때는 아무 노력 안 해도 굉장히 행복한 편이었다. (막판에 비자 안 나올 때 빼고..) 그래서 이 말을 아직 믿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려고 한다. 남자 친구도 굉장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느낀 점이 있다. 나는 원래 기본적으로 행복한 사람이었기에 내가 이렇게 우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처음으로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하나 생각했던 정도였으니까.. 근데 이 우울감을 지속적으로 방치하면 정말 우울증까지 갈 수 있겠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다. 약을 먹는다거나 상담을 한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여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심리 상담을 통해 (커플 상담도 했고 개인 상담도 함) 엄청나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말 심리상담 샘이 아니었더라면 ㅜㅜㅋㅋ 혼자서 이 고통을 감내하긴 어려웠을 것 같다.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내 성격상 남에게 힘든 얘기 하면서 부담 주는 것도 싫어한다. 

여하튼, 결론.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거다. 그때를 즐기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 그걸 추구해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 남의 욕망을 내 욕망인 양 추구하다 보면 그걸 이루었을 때 허무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불행해진다는 것을 배웠다. (위의 내용에서 왜 이런 결론이 나왔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그게 이번에 배운 교훈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 찾는 중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꼭 그걸 찾길 바란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최소한 하나씩은 있다고 믿으니까..

 

사진은 오늘 Ocean Beach 에서 찍은 귀여운 갱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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